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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더하게 하는 찬양 
- 테리로 목사님


제1장 사람의 생각을 공격하다

찬양과 경배의 능력

찬양과 경배의 메세지는 나의 삶과 목회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얼마 전에 나는 개인적으러 몹시 슬픈 일을 겪게 되었는데
찬양과 경배의 능력을 알게 된 후에야 그 슬픔을 극복할 수가 있었다.

이 체험 후에 곧 주님은 교회를 향하여 찬양과 경배의 메세지를 
전하는 특별한 사명을 나에게 맡기셨다.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만약 네가 찬양과 경배를 통하여 사람들을 내게로 인도 한다면
나는 병든 자들을 치료하고 잃어버린 자들을 구하며 억압받는 자들을 건져 내리라."

나는 이 사명이 나의 목회 활동에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임을 알았다.

이전에 나의 목회 활동에서 내가 우선 적으로 지향했던 분야는 주로 해외선교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때부터 나는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찬양과 경배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주님의 명령에 따라 행할 때
엄청난 능력이 나의 목회 활동에 역사하게 될줄은 깨닫지 못했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것을 똑똑히 인식하게 되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어느날 밤, 우리는 캐나다에서 약 400명의 회중들이 참석하였던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집회에서 성령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목격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자백하고 구원을 받았으며 많은 병자들이 구원을 받았다.

그 집회가 끝났을 때, 그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나를 한 주일학교 교실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키가 내 어깨쯤 오는 어떤 여자의 눈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두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마치 수건을 덮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녀의 표정 또한 무미건조하고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의 친구들이 그녀를 구원받게 하기 위하여
이 모임에 데려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녀가 일년 반동안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입원해 있는 동안 대개 보호의를 입혀야 할 정도로 
정신 착란 증상이 심한 편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악한 영들이 그녀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때때로 악한 영들은 그녀를 완전히 통제 할 수 없는 광포한 자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그날 밤,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를 우리의 모임에 데리고 왔을 때
그녀는 육체적으로 몹시 아파서 꼼짝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모임에 그녀가 참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마귀들이 한 짓이었다.

그 담임 목회자가 나를 보고 물었다.
"어떤 방법이 없을 까요?목사님께서 좀 도와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는 그 때 사단의 견고한 요새 앞에 서서 그의 막강한 
권세와 힘을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여자를 보며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 여자를 놓아주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그녀에게서 나오라!"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점하는 귀신들린 여자가 빌립보에서
여러날 동안 바울을 좇아 다니며 괴롭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으므로, 몹시 바울을 성가시게 하였던 것이다.

견디다 못한 바울은 마침내 그녀를 보며 그녀를 사로잡고 있던 
악한 영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그러자 그 귀신은 즉시 그여자에게서 나왔던 것이다.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나는 그 여자에게서가 아니라
그녀의 정신을 잡고 있던 귀신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악한 영들아,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너희에게 명하노니,
너희 이름을 대라." 비록 그녀는 거위 혼수 상태에 있었을 지라도 
여러 악한 영들은 그녀의 입을 통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 하였다.

차례로, 그 영들이 이름을 말했을 때, 그들은 그 여자에게서
빠져 나오며 그녀를 풀어 주었다.

여섯번째 영이 자신을 "정신 지배"라고 불렀을 때,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영이 그 여자에게서 나온 후에야 비로소 그녀는 나를쳐다보며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몹시 놀라운 말을 하였다.
"오, 모든 걸 기억할 수가 있어요."

그녀가 보여준 기쁨의 표정과 몸짓은 이 마인드 콘트롤(정신지배)영이 
그녀의 기억과 연속된 생각까지도 완전히 지배하였다는 사실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날 밤에 그녀는 완전한 구원을 얻었다.

내가 그 방을 떠날 때까지도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두손을 들고
춤을 추고 찬양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 날 밤에 우리의 집회에 그녀를 데리고 왔던 친구들도 함께 기뻐하였다.
나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인드 콘트롤

그 날밤의 체험은 내 마음 속에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사단이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는일을 한다는 
사실을 내게 확신 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사단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을 때, 그가 바로 이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3)

사단이 그리스도인들을 예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데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악한 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침투하여
우리로 하여금 원치 않는 일을 하도록 한다는 것도 그는 알았던 것이다.

이브를 미혹하였던 그 간계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우리를 향해서
작용하고 있다.
처음에 사단은 단지 이브의 마음 속에 의심을 자리잡게 하였었다.
그는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라고 이브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단은 먼저 사람의 마음에 호소함으로써 마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과 대립되는 위치에 놓이게 만드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함께 동행하였다.
실제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날이 서늘한 저녁 무렵에 동산으로
그들을 찾아 오시곤 하였다는 사실을 가리켜 준다.

그리고 하나님과 아담과 이브는 함께 걸으며 대화하곤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교제 관계를 아름답게 대변해 준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영적 화목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에덴동산과 관계된 몇가지 가르침을 주셨었다.
즉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뱀이 이브를 미혹 하였을 때, 그는 단지 하나님의 이 명령에 관하여
그녀의 마음 속에 의심을 품게 하였다.

그는 여기서 하나님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생각하도록 그녀를 부추겼다.
즉 하나님의 영향력이나 신령한 가르침을 벗어나서,그는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의 능력에 호소했던 것이다.

이브가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의 과실을 따서 먹고 
또 아담에게도 그것을 주었을 때, 사람의 인격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부조화가 일어나게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사람의 마음이 사단의 간계에 의해 
부패하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하였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사단과 당신의 마음

사단은 아주 쉽게 하나님의 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히 조종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심지어 교회안에서 엄숙히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동안에도,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세속적인 생각 속을 헤매고 있는 지 당신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때때로 저녁의 기도 시간에 당신이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
갑자기 부정한 생각 혹은 악한 생각이 당신의 마음 속에 들어올 수도 있다.

이건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며 또한 당신이 전에는 그런 일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당신은 킁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악한 생각들이 당신의 마음 속에 들어와서 의식하게 되자 마자
당신은 온통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이런 사악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다지도 부정한 존재였단 말인가?"
당신은 그 생각이 어디서 온 것인 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생각으로 인해 개인적인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당신이 그런 죄책감을 받아들이자 마자 그 생각은 당신의 것이 된다.
사단은 "형제들의 참소자"이다.
당신이 기억하기를 원하는 만큼 왜 성경 말씀을 기억할 수가 없었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사단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종종 그의 공격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을 때가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생각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단은 우리의 생각하는 과정 속에 그자신의 사상을 주입할 것이다.

사단이 이런 일을 행할 때 우리는 대개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악한 생각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인양 느끼게 된다.

생각하는 일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의 훈련이 없이, 제멋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사단의 공격을 받으며 또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일은 일종의 전쟁과도 같다.
악한 사단의 요새는 당신의 정신작용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신을 향하여 항상 잘 정비되어있다.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일에 몰두하게 만드는 
악한 영적 존재들이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또한 당신을 하나님에게서 떼어놓기 위하여 당신에게 질병과
곤궁함을 가져오고자 애쓰는 악한 영적 존재들이 있음도 잊지말라.

그들은 오직 당신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하여 
당신의 정신작용을 방해하는 데 온통 시간을 보내는 자들이다.

영적 전쟁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우리가 싸워야 하는 대상은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인 존재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 영적인 존재들을 "정사"라고 불렀다.

"정사"의 헬라어 단어는 "arche"라는 말인데,
문맥상에서 이 말은 "지배자들 중에서 첫째"라는 의미이다.

이"arche"는 영어와 뒤섞여서 'archbishop(대사교)' 
혹은 'archangel(대천사)'의 어원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력한 권세를 가진 악한 영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또한 에베소서 6;12에서 "권세"라는 말도 사용하였다.
이 말의 헬라어는 'exousia'인데, 이 악한 영적 존재들이 지배하고 있는 
권세의 분야에 관해 말해 준다.

또 같은 절에서 바울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도 언급하고 있다.
이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이며, 지배자 혹은 주관자로
불리우되, 당신과 나를 대적하는 자들인 것이다.
우리는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지금도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 절에서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도 언급하였다.
이들 역시 큰 권세와 능력을 가진 영적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들과도 치열한 영적전쟁을 치루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정사와 권세와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로 불리우는 그들과 싸워야 하며
또한 바울은 그들이 "하늘"에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이것은 영적 세계에서 이 악한 군대들이 전열을 펴고
모든 신자들을 대적하여 싸워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전쟁터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세계가 된다.
영적전쟁은 실제하는 것이며 결코 상상이나 가공의 이야기가 아님을 기억하자.

사단은 그가 사람의 마음 속의 생각 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당신을 지배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안다.
사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삶에서 그가 손을 댈 수 있는 주요 공격 대상이다.

만일 그가 당신의 마음을 통하여 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다면,
그는 절대로 당신을 얻을 수가 없다.

당신은 이 사실에 대해 놀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쉽게 병에 걸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질병은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정신과 육체의 부조화로 일어난다. 

사단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공격했을 때 가해지는 충격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이것에 대한 성경적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은 무어라고 말하는가?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은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사단의 권세에서 풀려나 고침을 받았다.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후에 빌립은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청하여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안수하게 하였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게 하였을 때,
그들이 나타낸 능력을 보고 자기도 그런 능력을 갖기를 원했던 
시몬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돈을 주며 자기도 그들과 똑같은 능력을 갖게 
해달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시몬을 꾸짖으며 그에게 이렇게 충고하였다.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22절)

이 절에서 "품은 것" 이란 "생각"을 의미한다.
시몬은 사단에게 미혹 당하여 어리석은 일을 행했던 것이다.

이처럼 사단은 시몬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 아래 
들어가게 하는 생각을 품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실제로 이렇게 말한 셈이었다.
"사단이 너의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을 넣었도다.
너는 그것을 너의 생각인 양 여기고 받아들여 그대로 행하였도다.
그러므로 네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리라."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그러한 생각에 대하여 하나님게 용서를 빌라고
시몬에게 명령 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끊임없이 사단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예중해 주는 사건이다.

사단은 어떻게 하여 우리의 마음 속에서 사악한 생각들을 품게 만드는가?
당신은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에 관하여 성경이 무어라 말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 본 적이 있는가?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13:2).

사단은 유다의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을 떨어뜨렸으며,
유다는 그생각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생각에 대하여
유다는 책임을 져야 했던 것이다.
그는 그 생각대로 행동 하였다.

유다는 그리스도를 배반할 것인지 혹은 배반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분병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단이 그의 마음 속에 넣어준 그 생각에 귀를 기울였고,
그래서 그 생각대로 행동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의 원수들이 접근해 올 때 가장 최우선적으로 행하는 일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들은 물론 우리가 그 생각을 받아들여 그대로 행동하기를 원한다.
만약 그렇게 되었을 때, 
그는 우리의 삶에서 그가 원하는 목적을 성취한 것이다.

사단이 가장 먼저 우리를 공격하는 부위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서 6;12에서 기록된 바울의 말을 
실감하지 못하는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생각을 공격하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 주고 싶다.
1978년에 나는 나의 '리빙 사운드'음악 선교팀의 일원이 되어 
소련을 방문 하였다.

우리는 어떤 도시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매일 밤 우리는 록앤롤 밴드가 연주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였다.

어느날 밤에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주셨다.
"너희 음악가들에게 음악회를 열 준비를 하라고 말해라."

나는 우리의 음악가들에게 록앤롤 밴드의 리더를 찾아가서
그들을 돕겠다고 말 하라고 권하였다.

그 밴드의 리더는 한 그룹의 미국인들이 그들을 위해 음악회를 
열어 주겠다는 말에 기뻐 하였다.

우리 팀은 45분동안 복음 송 음악회를 열었다.
그 후에 약 5분동안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였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하도록 권면 하였다.

그 곳에는 약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결과는 깜짝 놀라운 것 이었다. 
어떤사람들은 환호 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은 화를 내었다.

그 호텔 캬바레 쇼의 스타였던 한 젊은 여성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 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주였다.
그녀는 우리를 찾아와서 더 많은 것을 알기를 원하였다.

그녀는 그날 새벽3시에 그녀의 생명을 바쳤다.
그녀의 삶은 변화되었다.

그 다음날 저녁에 쇼무대에서 그녀는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는지를 사람들에게 증거하였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매일 이같이 하였다.
그 호텔 경영은 엉망이 되었고,그 결과로 비밀 경찰을 불러 들이게 되었다.  
그녀는 호텔에서 해고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르주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그녀는 단지 자리를 옮겨 메서디스트 교회로 찾아가서
거기서 간증을 시작 하였던 것이다.

그녀의 간증을 듣기 위하여 100키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도 
젊은이들이 찾아왔다.

마침내 그녀는 안전을 위하여 다른 나라로 피신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그녀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피신 하였다.

그후에 나는 스톡홀룸을 방문하여 잠시 그녀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때 그녀는 화려했던 과거의 삶과 현재의 생활을 비교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를 슬프게 하는 생각들이 자꾸 머리 속으로 파고 들어 옴으로써,
그녀는 이런 생각들을 떨쳐 버리느라 치열한 내적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생각들이 사단의 간계임을 직시 하였고, 그래서 
그녀의 안식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그녀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주셨다.

나는 그녀와 함께 기도한 후에 스톡홀름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Y.M.C.A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이 스톡홀름 화류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호텔 밖의 거리에는 많은 섹스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하루의 일과에 지쳐서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잠간동안 눈을 붙인 후에 내 의식은 
깊이 잠들지 못하고 깨어나기 시작 하였다.

그때 나는 반쯤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
나는 내 마음 속에 대단히 사악한 생각들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나는 내 마음속에 대단히 사악한 생각들이 들어와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생각들은 과거의 어떤 생각보다도 악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 지를 확신하였으나,
그 생각들은 마치 내부에서 내게 이렇게 말하는것 같았다.

"너는 사악한 자이다. 
네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너의 마음이 형언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하고 부도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그런 너와 손을 잡고자 한다.우리는 바로 네안에 있다."

그 때 나는 완전히 의식이 돌아 왔으며 내가 영적 전쟁의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영적 기도를 올렸고,그러한 생각들이 나를 떠나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다.
그들은 쉽게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마침내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 압박감이 나를 떠난 것을 느꼈으며
그 결과로 완전한 해방을 맛 볼 수가 있었다.

그 일은 사단이 직접적으로 나의 생각을 공격한 경우였다.
이 악한 영적 존재들은 당신의 마음 속에서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

당신을 공격하고, 당신을 병들게 하고자 시도하며,당신의 결혼 생활을
파멸 시키고자 시도하고, 당신의 경제 사장을 악화시키고자 하는 
그런 생각들은 사단으로 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극히 적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은 무익한 TV 프로그램에 쉽게 사로잡히고 만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시시하고 너저분한 연예나 오락 프로그램에 열중하는 것을 
허용한 결과로 사단의 직접적인 공격에 거의 항상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2:2 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그 때에 너희가 그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절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단의 가공스러운 능력을 묘사하고 있다.
이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왕자는 지금도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다.

그는 불순종의 아들들을 직접적으로 또한 적극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나님을 따르고자 힘쓰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역사하고 있다.

그의 활동의 권세는 "역사하는"이라는 말에서도 짐작 할 수 있다.
사단은 지금도 당신과 내 속에서 역사하고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 15:18).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절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이니"(19절)라는 
말씀이 담고 있는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살인도 악한 생각에서 나오고, 간음과 음란도 악한 생각에서 나오며
도적질과 거짓 증거의와 훼방도 악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악한 생각들은 악한 행위를 낳는다.
영들은 생각들을 통하여 활동한다.

악한 영들과 관계된 나의 모든 체험을 통하여 나는 그들 모두가 
사람의 생각들 중에서 어떤 영역을 지배하기 원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두려움도 생각에서 기인되고 자살도 생각에서 기인되며 살인도 좌절도
알콜 중독도 사람의 생각에서 기인된다.

사단이 당신의 삶 안에서 자신의 요새를 건설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이 사단으로부터 당신에게 오는 것이다.

그는 당신 내부에 그의 왕국을 세우기를 원한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당신이 무익한 자가 되기를 원한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할 수가 없다면 당신의 삶의 어떤 부분에서 기반이 되는 것을
무너지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당신을 쓸모없는 자가 되도록 시도할 것이다.

예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에 그는 제자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시고
이런 말씀을 하였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눅24:38)
그는 그들이 무엇때문에 놀라고 무서워하는지를 아셨던 것이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 하였던 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생각들 때문이었다.
그들의 두려움은 직접적으로 그들의 생각과 관계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똑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두려워 하는 자들은 많이 있으나 그들의 마음을 괴롭히는 그 두려움이 
사단의 생각에서 기인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영혼들은 극히적다.

우리가 그러한 생각들을 받아들인데 대해서는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들이  낳은 고통 속에서 
오랜세월을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사단의 능력을 증거하는 성경 절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절 중 하나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 안에 들어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마13:19)

우리는 잠시 이절을 공부해 보기로 하자.
그래서 사단이 당신이나 혹은 내게도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관해 알아 보기로 하자.

사단은 우리가 있는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천국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 속에서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고있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능력을 가졌기에 그는 이런 일을 행할 수가 있을까?

최근에 나는 하와이 호놀룰루 외곽에서 개최된 어떤 회합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연설해 달라는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 분야에서 사단의 능력에 관하여 그들과 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토론에 참가하였던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는 항상 사단이 우리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고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까?"

내 대답은 간단하였다.
"당신은 독심술을 광고하는 인쇄물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교 집단 내에서도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을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악의 영들로 부터 그러한 능력을 얻고 있습니다."

마음을 읽는 자

우리의 마음은 사단의 시야에 노출돠어 있다.
그는 우리가 복음을 언제 이해하지 못하는 지를 알고 있다.

또한 그는 우리의  마음이 언제 어두워지는지도 알기 때문에 
복음의 진리에 모순되는 생각들을 갖도록 만든다.

게다가 위에서 인용한 마태복음 13:19은 
악한 권세가 있다는 것을 가리켜준다. 

그는 진리를 빼앗아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갈 수가
있는 것이다.그가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을 하는가?

당신은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을 
기억하는가?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
베드로의 질문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사단은 아나니아의 마음을 거짓으로 가득채웠던 것이다.
아나니아는 전에 하나님의 자녀였으나 원수가 그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았고 그리고 나서 아나니아의 마음을 그의 거짓으로
가득 채웠던 것이다.

이것은 사단이 우리의 정신과 마음속에 그 자신의 사상을 침투시킬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해준다.

이것이 당신과 나를 대적하는 악한 자의 능력을 이해하게 하는 열쇠이다.
영적전쟁의 중심이 바로 우리의 마음 속이라는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만일 그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그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또한 만일 그가 우리의 마음을 그날의 사소한 일들로 가득 채을 수가 있다면 
그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또 만일 그가 우리의 마음 속에 그의 사상을 침투시킬 수가 있다면 
만일 그의 복음이 선포되는 순간에 우리의 마음을 다른 일에 
집중하게 할 수가 있다면 그는 완전히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벧전1:13)고 권면 하였던 것이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하였다.

"근신하라, 깨어라,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삼키며 삼킬자를 찾나니"(벧전5:8)

원수가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삼키는가?
바로 우리의 생각들을 지배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사냥감에 몰래 접근하는 사냥꾼과 같다.
그는 어둠속에 몰래 숨어있다.그는 당신을 연구한다.
또한 그는 당신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잘 당신을 알고 있다.

그는 그의 생각을 당신에게 침투 시키되 시위를 떠난 화살보다  
더 빠르게 당신의 마음 속에 그런생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러면 당신은 그가 넣어준 생각을 생각하고 그것이 당신의 생각인양 느끼며 
그 생각으로 인하여 죄책감을 느낄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렇게 하자 마자 그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사단은 성경에서 "형제들의 참소자"(계12:10)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앞에서 주야로 우리를 참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서도 
매일 우리자신에게 우리를 참소하고  있는 것이다.

죄책감을 가지게 하는 능력

사단이 신자의 마음 속에서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은 
죄책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는 여러 세기 동안 과거의 죄를 기억하게 하고 
또 신자로 하여금 죄책감을 가지게 함으로써 신자들을 교묘히 조종해왔다.

그는 문자 그대로 우리가 행한 일들의 기억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에 
늘 붙어 다닌다.
이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를 지배하는 그의 능력의 일부이다.

오직 우리가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열쇠를 사용할 때만이 
우리는 영적 승리를 얻을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수를 그들의 주님으로 
또 구세주로 시인할 때 전쟁은 끝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은 이렇게 하였을 때 내적으로 깨끗해졌음을 느낄 것이다.
그들의 삶은 매우 새롭고 신선하다.

그런에도 불구하고 사단과 그들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이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선포하자 마자 
본격적으로 전쟁포고의 나팔이 울리는 것이다.그 즉시 새 전쟁이 시작된다.

당신이 거듭날 때 당신은 하나님 나라의 군대일원으로 명단에 오를것이다.
또한 그때에 악한 군대가 결코 전과 같지않게 대오를 정비하여 
당신을 대적할 것이며 당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위하여 
그들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대적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새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새마음이다.
로마서 12:1,2을 보기로 하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바울은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우리에게 권면하였다.
이것은 사단이 우리의 마음속에 집어 넣고자 시도하는 세상적인 것들을
우리가 피해야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속적인 생각들을 피하라.
세속적인 생각들을 부추기는 TV프로그램들을 시청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의 추문에 귀를 기울이지말라.
음란한 잡지나 비디오를 보지말라.마약을 복용 하지 말라.

원수가 당신을 공격할 때 당신의 마음을 열어놓게 할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지말라.

"이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영적변화

위에서 인용한 절에 나오는 "변화"의 헬라어는 "metamorphose"이다.
이말은 나비의 유충이 나비로 변형되는데서 나온 말이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그의 영은 재창조된다.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마음가지 완전하게 새롭게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마음이 새롭게 되는 과정이 그리스도인의 영적전쟁에서 
중요한 부문을 차지하는 것이다.

마음이 새롭게 되는 일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가 있다.

또한 성령님에서 기도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가 있다.
또 찬양과 경배의 능력 안에 들어감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도 있다.

우리가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겠다고 결심을 할 때 사단은 우리를 공격한다.
그는 마음을 새롭게 하기위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한 신자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진다.

그 때 그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신자를 중상모략하기 시작한다.
사단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중 하나는 바로 변화된 삶을 낳는 
변화된 마음인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4:23)

사단은 그가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때 몹시 기뻐한다.
그는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까지 총력을 기울여 우리를 모욕하고 
중상모략하고 우리에게 싸움을 건다.

슬프게도 주님을 섬긴지 10년 혹은 20년이 지난 많은 신자들도 
그들의 정신세계에 관한 한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경우가 
흔히 있다는 사실이다.

그 첫째 원인은 그들이 사단의 일하는 방법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당신에 대한 사단의 지배는 당신이 그를 대적하여 싸우기로
결심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컴퓨터와 같다.
마음은 결코 그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예수님에 대한 생각들로 당신의 생각을 양육하라.
그러면 마음은 예수님에 관한 생각들을 생산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세상적인 생각들로 마음의 컴퓨터를 양육할 때
당신은 세속적인 인간형을 생산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 때 사단은 우리의 마음의 컴퓨터를 
프로그램하는 주인이 될 것이다.(중독상태)
이런 식으로 사단은 우리에 대한 지배를 실천에 옮긴다.

우리의 의지에는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그런고로 그는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이와같은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제안의 명수

사단은 당신의; 생각들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는 못하였다.
그는 단지 제안과 암시의 명수일 뿐이다.

그는 과거로부터 기억을 유발시키고자 할 것이다.
또 그는 무의식 속에서 어떤일을 꺼집어 내어 즉각 우리에게 유혹이라는 
미끼를 던질 것이다.

그 원수는 우리가 우리의 생각의 산물이라는 것을 안다.
또 그는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의지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사단에게 당신 마음의 컴퓨터를 프로그램할 기회를 주는 한 
당신은 그의 지배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사단이 사용하는 전술은 매우 다양하다.
그는 당신에게 무서운 죄를 짓게 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는 한가지 다른 방법에서 당신을 쓸모없는 자로 만들 수 있는 
전술을 택하여 사용할 것이다.

만약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당신에게 한가지 약점이 있다면 당신이 도덕적인 삶과
선한일을 행할지라도 그는 행복하다.

그가 당신을 쓸모없는자로 만들수 있는 방법을 아는 한 
그는당신이 교회에서 어떠한 직분을 가지든 간에 개의치 않을것이다.

실제로 매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며 사회생활에서도 잘 적응하고 
멋진 가족들과 친구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안에서는
무익한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있다.

그들은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거나 하나님나라의 확장을위해서는 
아무런 짐도 감당하지 않고 있다.

그 원수가 그들을 잠자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전술중 하나이기도 하다.

만일 사단이 우리의 마음에 접근하였다면 
그는 어떻게 우리의 마음에 대한 지배를 실행하는가?

문자 그대로 그는 우리의 생각하는 일을 지배할 수가 있는가?
그는 생각들을 선택하는 일에도 개입할 수가 있는 것일까?

그가 원하는 대로 우리를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그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침해할수가 있는것일까?

그렇지 않다.그는 이러한 일들은 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도 자유선택에 관한 우리의 특권을 침해하지 않으신다.

사단은 우리에게 악한생각들을 제안하는 능력을 가졌으나 우리가 그제안들을
우리의 것으로 여기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런 제안들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선택을 한다.
믿음조차도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근거한다.

믿음은 신적 계시에 대한 응답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자신에게조차 우리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그는 또한 사단에게도 그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하나님게서 그것을 허락하신다면 우리도 우리가 행한일에 대해
더이상 책임을 질 필요가 없을것이다.

우리는 단지 죄를 범한 후에도 어느 유명한 코미디언처럼 어깨를 으쓱하고 웃으며
"악마가 나를 그렇게 하도록 했을 뿐예요"라고 말하면 그만일 것이다.

(사단에게는 정죄당하지않으며 하나님께는 이미 죄의 삯으로 지불된 보혈을 믿고 
용서해주세요 하며 즉시즉시 자백하고 씻음받아야 할것입니다)

당신은 언제 책임을 지는가?

사단은 우리가 우리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를 원한다.
그는 우리가 사악함에 대한 심판을 받기를 원한다.

물론 그것은 그가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사악함이다.
그런고로 그는 우리의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우리를 조종 할 수 있는  창조적인 방법들을 고안해 낸다.

만일 사단이 당신에게 심은 생각을 당신의 것인양 받이들이기로 하는 
대단히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면 사단은 그가 성공하였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원수의 능력에 관하여 간략히
요약해 보기로 하겠다.

1> 그는 우리의 마음에 접근한다.
2> 그는 생각들과 상상 동기와 야망 걸망등을 일으킬 수가 있다.
3> 그는 우리의 약한 곳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상처받기 쉬운 부위를
찾아내어 공격할수가 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아는 것보다 그가 당신을 더 잘 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는 지나간 몇년 동안에 우리가 행했던 거의 대부분의 일들을 잊어 버린다.

그러나 사단은 잊지 않는다.
그것들은 우리의 기억기관의 어느곳엔가 아무렇게나 구겨 넣어져 있는셈이다.

그러나 사단은 그기억 기관을 면밀히 조사하여 우리를 그의 지배 아래 
두게할 수 있는 사상이나 죄책감의 종류들을 생각나게 하는 전문가이다.

그는 단지 제안과 암시를 통하여 그 모든일을 행하지만 그는 매우 능숙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의 제안과 암시들은 깜짝놀랄만한 능력을 발휘하는것이다.

우리는 제안과 암시에 의해 산다.
창조적인 생각은 일종의 제안과 암시일 뿐이다.

세상의 가장 위대한 발명들도 제안과 암시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도 제안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의 제안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능력의 말씀

말씀 - 우리의 무기

한 젊은이가 군대에 들어가면 그가 맨처음 배워야 할 일은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는 총을 지급 받으며 총을 분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눈을 감고서도 총을 분해할 수 있도록 그를 가르칠 것이다.

훈련을 마친 후에는 만약 필요 하다면 그는 폭풍이 몰아치는 한밤중에도 
능숙하게 충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될것이다.
그는 또한 총을 정확히 발사하는 법도 배울 것이다.

하나님의 군대에서도 이와 똑같은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 역시 우리의 영적 무기들과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이 장에서 나는 한가지 특정한 무기 - 하나님의 말씀 - 의 능력을 
살펴 보고자 한다.

이 무기에 관해서 철저히 공부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의 손에 쥐어 주신 
이 놀라운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자가 되기로 하자.

이 장에 나오는 내용 중에는 당신이 처음 듣는 새로운 일도 있을 것이며 
그 중 어떤 내용은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오직 우리의 목표는 승리를 위해서 당신을 준비시키는 데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구절은 대단히 중요하다.물론 이것은 성경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할 때에도 사용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1:1에서 그는 말씀으로 언급되어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또 이 장의 14절을 보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분명한 의문을 가질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 혹은 누구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인가? 아니면 성경인가?

성경이 그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르고 또 성경이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를 때 하나님은 그들의 본질에 있어서 
본래 하나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과 그리스도는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이 둘은 각각 똑같이 하나님 자신의 계시이다.
그들은 서로 완전히 일치한다.그들은 연합되어있다.

그들은 여러가지 표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적 본질을 담고 있다.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있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는 성경의 완전한 표현이며 성취이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이 사실에 대해서는 문제를 가지고 있지않다.
이것은 구원의 도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그들의 관계가 
성경 말씀과 그들의 관계와 똑같다는 사실을 결코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큼 성경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다.
말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측정하는 저울과 같다.

예수를 보는 일

요한복음 14장에서 우리는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 주고 받은 
흥미있는 대화를 보게된다.

예수께서는 그가 떠날날이 가까왔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요14:19)

언뜻 보기에 이말씀은 모슨이 있는것 처럼 보인다.
세상은 보지못할 것이나 제자들은 계속 그를 볼 수 있다니...
유다가 의문을 표시하였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22절)
사실 그는 이렇게 물은 셈이었다.

"주여 당신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우리는 당신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사람들은 어찌하여 당신을 볼수 없을 것이라고 하시나이까?
당신과 우리들 사이에만 가능한 어떤 전달체계라도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말을 지키리니 내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23절)

예수께서는 이절에서 우리에게 엄청난 비결을 지닌 열쇠를 주신 셈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영적 진리를 완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지키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다"는 의미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를 사랑하면 우리는 그의 말씀을 행할 것이다.
즉 우리는 그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길것이다.

또한 이말은 우리가 사단에게 "성경에 기록되었으되"라고 말하고
우리의 로켓위에 우리의 무기들을 실려 발사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다는 이렇게 질문을 한셈이다.

"주여 당신은 어떻게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시려 하나이까?"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 셈이다.

"너희가 내말대로 행하면 아버지와 내가 너희에게 올것이요,
또 우리가 너희와 거처를 함께 하리라"

예수님의 이진술 안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네가지 원리가  담겨있다.

첫째는 신자인 우리를 세상과 구별하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기 행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것과
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것에 의해 예수께서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시게 될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번째 원리는 우리가 말씀을 행할 때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의 삶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마음 중심에 영원한 거처를 세우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쇠는 항상 말씀을 행하는데서 발견된다는 것을 주목하라

말씀을 행하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일은 세상으로 하여금 당신이 신자임을 알게 하는일이다.
당신이 말씀을 실행하는 전도(혹은 분량)는 당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말씀을 행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그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당신의 삶 속으로 들어오시는 방법인 것이다.
이사실들은 신자의 삶과 놀라운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당신의 태도는 곧 하나님 자신을 향한 당신의 태도가 된다.
당신은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아른다운 말과 고귀한 몸짓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라도 당신이 그의 말씀에 바치는 시간과 헌신의 분량은 
당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증거하는 척도가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것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말라

또한 당신은 그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만큼 하나님을 종귀히 여기는 셈이다.
이것은 매우 쉬운 측량방법이다.

당신이 만일 하나님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의미가 있는 분인가를 알고싶다면
그의 말씀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의미가 있는 가를 측량해보라.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일에 매일 얼마나 시간을 바치는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당신은 그의 말씀을행하는 데당신의 마음을 헌신하고 있는가?
여기에 열쇠가 있다.

마태복음 7:24-27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반석위에  지은집과 모래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었을 때 전자는 무너지지 않으나 후자는 무너지고 말았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된후에도 비가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부는것과 같은 
어려운 시험을 만날 것이다.틀림없이 그럴것이다.

왜 한 집은 무너지지 않았으나 다른집은 무너졌는가?
성경은 그차이가 기초에 있다고 증거해준다.
한 집은 그 기초를 반석위에 세웠으나 다른 집은 모래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집을 반석위에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 당신은 이 비유에 관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주일날 성가대에 앉아 찬양을 부르는 성가대원으로 
즐곧 봉사해 왔을지라도 지금까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의 충격에 
사로잡혀 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비유속에 나오는 두사람의 차이는 그들의 행함에서 발견된다.
그의 집을 반석위에 지은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이다.
그러나 그의집을 모래위에 세운 사람은 말씀은 똑같이 들었으나
그대로 행하지 않았던 자이다.

여기에 차이가 있다.
이두 사람은 모두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쪽 사람인가?

나는 20년내지 30년동안 말씀을 들어왔던 신자들을 안다.
이론적으로는 그들도 병이 났을때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을 복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그들도 믿는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문자 그대로말씀을 행하겠다고 결코 결심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고침을 받기까지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킨적이 없다.

원리를 배우는 일

여러해 전에 나는 인생에서 엄청난 비극을 겪은 적이 있었다.
교통 사고로 나는 아내를 잃어야 하였다.

나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비통함에 젖어 있었다.
나는 나의 사역도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비통한 심정으로 나는 주님께 불평을 터뜨렸다.
"이것은 공평하지가 않습니다."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후 약 한달쯤 지났을때 
나는 오랄 로버츠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함께 그의 사무실 안에 있었다.

우리는 죽음과 슬픔에 관해 이야기 하였으며 또 그런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였다.

대화가 끝날 즈음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젊은이 당신의 삶을 구원해 줄 일을 자네에게 말해주고 싶네.
자네가 내 말대로 행한다면 그렇다는 말일세.집으로 가게.
그리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서 기도를 시작해 보게.
비록 위경에 처해 있지만 그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라네."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의말이 내게주신 주님의 말씀임을 알았다.
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것도 알았다.

그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나는 침대곁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주님을 찬양하기로 결심하였다.
처음 나는 "할렐루야~!"라고 말했다.
그때 사단이 내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무엇때문에 너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거지? 테리로,네 아내는 죽었어.
그가 네게서 빼앗아 간거야."

그러나 나는 간신히 이렇게 말할수가 있었다."감사합니다,주님"
또 사단이 속삭였다.
"너의 어린 세 자식들이 어머니를 잃었는데 네가 어찌 주를 찬양할수가 있니?
말도 안돼. 너의 속마음은 그렇지가 않을 걸. 너는 위선자야."

이런식의 영적싸움은 15분쯤 계속한후에 나는 기도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영적으로 나의 영은 캄캄한 어두움 속에 싸여 있었다.
나는 주님께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 당신의 말씀을 행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내 마음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가 없습니다."

그때 나는 시편기자인 다윗의 말이 나의 영으로 부터 떠오르는 것을 감지하였다.
그것은 시편 34편 1절말씀이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나는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서 건져줄 자를  찾고있는 사람과 같았다.
나는 다윗의 이말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그리고 결심하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을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바로 지금 내입에 있을 것 이로다."
나는 이를 악물고 주님을 찬양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두시간 반가량 하였을 때 나는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다.

그후에야 나는 사단이 그동안 내내 나를 비웃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씀을 행하는자가 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두시간 반 후에 나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붕괴되었다.
나는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그내용은 나지신에게 영어로 
통역하여 들려주었다.

나는 나의 삶에서 비통함 자기연민 분노가 나가라고 명령하였다.
여러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무릎을 폈을 때 나는 이미 치료를 받았으며 
주님의 위로가 내안에 있었다.
두달동안 매일 이런식으로 나는 주님을 찬양하였다.

어느날 기도를 시작한지 얼마후에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있던
나에게 주님은 이런 말씀을 주셨다.

"네가 찬양과 경배를 통하여 사람들을 내게로 인도한다면 나는 병든자를 고치고
잃어버린자를 구원하며 억압받는 자를 건지리라"

나는 즉각 사무실로 전회를 걸어 우리의 음악부서의 리더인 돈모엔에게 
하나님의 이메시지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는일에 근거하여 
치료와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게 된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찬양을 통해 병든자를 치료받게하는 다른 복음전도자를 알지 못했다.
이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직접들었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을 뿐이다.

우리는 1983년 2월에 오클라호마,우드워드에서 찬양과 치료의 
첫 십자가 운동을 시작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우드워드에 도착했을 때 그마을은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우리의 집회에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70내지 80여명의 사람들이 참석해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주님이 내게 말씀하였던 일을 들려주었다.

"오늘밤 우리가 찬양할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병든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게될 것입니다."라고 나는 선언하였다.

나는 이런 나의 선언이 청중들에게는 틀림없이 
약간 과장된 말로 들렸을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말대로 확신하고 있었다.
찬양에 대한 나의 메시지가 끝난 후 나는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병든 육체에서 질병이 떠나라고 명령하였다.
그때 한순간 나는 매우 약하고 가망이 없는 것같이 느껴졌다.

악마는 계속해서 나를 조롱하며 말하고 있었다.
"아무도 치료를 받지 못할거야. 네가 하나님이 그들을 만졌는지 아닌지를 
사람들에게 물을 때 너는 그들에게 멍청한 바보처럼 보일거야."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어떤분을 고쳐주셨습니까?"하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일곱명이 손을 들었다.

그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치료의 예배를 드린 장소에서 아무도 치료받지 않고
끝난적은 결코 없었다.

주께서 내게 나타내신 비결은 
"너는 말씀을 행하는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오직 말씀을행할 때만이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때에
행하셨던 일을 당신도 행할수가 있다.

오직 그때서야 당신은 "사단아 성경에 기록되었으되"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질병을 공격할 수가 있으며 
사단의 생각들위에 하나님의 생각들을 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오직 당신이 이렇게 행할때 만이 당신은 당신의 집을 
반석 위에 세웠다는 것을 알수가 있을 것이다.

말씀을 듣는 일괴 말씀을 행하는 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내에는 주요한 분기점이 존재한다.

야고보서1:22-25을 보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기서 아고보는 주일 아침마다  우리의 교회들에 출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일을 묘사하고 있다.

교회의 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회중들은 그 말씀을 듣는다.
그들은 말씀을 듣는자가 되기는 하였으나 그말씀을 행하는자가 되지는 못한다.

즉 그들은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이 되었던 것이다.
거울은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그대로 비쳐준다.

또한 영적거울은 우리의 죄악,우리의 잘못들과 우리의 문제들을 드러내 준다.
또 그것은 우리의 의와 받은 축복까지도 사실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이다.

문제는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서 발견된다. 
만일 우리가 듣기만 하고 행하는자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래위에 집을 세운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말썽이 일어나고 마귀가 정신적 압박을 가해오고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우리가 실업자가 될때 
우리의 집은 무너지고 말것이다.

또한 은행원이 당신의 수표를 지불할수 없다고 말할 때 
당신의 집은 무너질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당신이 말씀을 행하는자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곧 무너지게될것이다.

반석위에 세우는 일

예수께서는 반석 위에 세우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 여기에 승리의 열쇠가 있다.

만일 우리가 말씀을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말씀자체와 관계된 일을 이해해야 한다.
즉 우리는 말씀에 관하여 기본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말씀의 본질에 관한 진리가 우리의 영에 침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 그 자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히브리서 4:12에는 중요한 8가지 메시지가 담겨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여기서 첫번째 나오는 메세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는것이다.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은살아있는 말씀이다.

당신은 성경말씀이 예수께서 살아계신 것과 똑같이 살아 있다는 말을 믿는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
우리는 잠시 이진술에 관해 묵상해 보기로 하자.

원어상의 의미에서 보면 이말은 말씀의 에너지가 충만하여 힘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으며 또 힘이 있다고 말한 셈이다.

성경은 강력하고 원기왕성한 에너지로 에너지와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다.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6장 63장에서 이와 동일한 일을 말씀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어찌들으면 예수님의 이말은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선포로 보일 수도 있다.
여기서 그는 그의 말씀안에 영과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성경 안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다룰 때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 그자체를 다루고 있는것과 같다.
그의 생각들은 그의 생명(신적본질)을 운반한다.

데살로니가전서 2:13 에서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게된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이 너희믿는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요한복음 6:63 과 데살로니가전서 2:13 두절에는 
당신의 믿음의 기초가 되는 기본진리가 담겨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안에 영과 생명이 있다는것을 믿기까지는 
결코 진실로 그 말씀을 행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 역사하는 에너지와 능력이 있다는것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성경은 결코 당신에게 한권의 책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생명이다.
또한 그것은 살아있으며 운동력이 있다.게다가 그것은 역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고 가르쳤다.
즉 당신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한다는 말을 믿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역사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이혼을 막아줄 것인가?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인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역사를 할 수 있을까?
당신은 그것이 이러한 역사를 할수 있다고 믿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를 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는 오직 한가지 것이 있다.
그것은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1)

여기서의 "도"는 "말씀"을 의미한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전에 내어 버려야 할 두가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더러움과 악이다.

여기서 "더러움"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불순(음란을 포함하여)하고 사악한 알에 대한 흥분을 가리킨다.

이런 종류의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의 당신을 차단시킨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악"이란 말은 나쁜행실의 어린이를 언급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어린이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태도는 제멋대로 행하려고 하고 어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런성품은 흔히 "청개구리"라고 부르듯이 대부분 반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하라면 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자기 고집만을 주장한다.
이 성품안에는 반역의 뿌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중생하지 않은 마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기를 
싫어하는 성질이 있다.
당신이 구원을 받을 때 당신의 영은 중생함을 얻는다.

당신의 영은 재창조되었으나 당신의 마음도 새로와질 필요가 있는것이다.
당신의 마음은 중생하지 않은채로 남아 있으며 하나니의 말씀에 거스리는 
반역된 상태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를 원치 않으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일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말씀의 반역 안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위해 역사하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주권"에 우리의 마음을 굴복시켜야 한다.
또한 우리의 생각들을 하나님의 생각들에 동의하도록 일치시켜야 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관찰하는 일은 흥미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나란히 앉아서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는 있지만 
그들의 반응은 각각 다르다.

말씀대로 행하고 기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씀을 듣고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전에도 이런 말씀을 들었지만 나는 어떠한일이 일어나는것을 결코 본적이 없다.
그런데 왜 지금 어떤일 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그결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잘못되었다면 말씀은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에너지로 총만되어있다.
말씀은 또한 축복이다.
말씀은 억압받고 있는 영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으며 
물질적인 축복 떠한 일으킬수있다.

말씀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 당신 안에서 일으키는 역사를 결정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우리가 오직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그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말씀은 검이다

좌우에 날선 검은 로마 군인들이 사용 하였던 무기였다.
로마 제국은 그 군인들의 손에 쥐어진 이 무기를 통하여 이룩되었다.

그 검은 싸움에 있어서 우세한 무기가 되었으나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이 예리한 로마의 검보다도 더 예리하다고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한다고 하였다.
말씀은 사람들을 두그룹으로 나누는데 곧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과 
듣고 행하는 사람으로 나누는것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받고 고침을 받고 번영하지만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잃어버린 자가 되고 말것이다.

또한 말씀은 서로 대적하는 가족관계를 낳을 수도 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10:34-39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한 가정내에 불화를 낳을수가 있다.
곧 말씀을 듣는 자들과 행하는 자들사이의 불화이다.

듣는 자들은 항상 행하는 자들을 헐뜯으려고 한다.
그러나 행하는 자들은 듣는 자들을 똑같이 헐뜯지 않는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일에 관한 진리를 깨닫고 
영적으로 교만해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오직 듣기만 하는 자들을 비판한다.
이런 종류의 영적교만은 성직자들에게서 매우 쉽사리 전달될 수가 있다.

만약 우리가 진실로 말씀을 행하는 자라면 우리는 이 진리의 능력을 깨닫지 못한 
다른 형제들을 격려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낼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또 우리는 그들도 그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고침을 받을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의 에너지로 그들의 삶이 둘러싸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진리를 이해시키려고 힘쓸것이다.

말씀은 판단자이다

히브리서 4:12,13의 말씀을 주목해 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이것은 중요한 열쇠가 된다.
무엇보다도 더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말씀은 운동력이 있으며 역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말씀이 두동강이 난 칼처럼 
듣는자와 행하는자로 찔러 쪼개는 일을 한다는 사실도 이해해야 한다.
듣는것이 마음에 있다면 행하는 것은 영에 있다

말씀은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 우리를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그 말씀대로 행할 것인지 
혹은 행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기로 결정했을 때 말씀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는 판단자가 된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과 관련하여 계시를 받을 때 -
당신이 말씀을 행하기로 당신 자신을 넘겨줄 때 당신은 그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때 당신이 취할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생각들의 판단자로 삼아
당신의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함에 있어서 사단의 생각들에 대적하는 
하나님의 생각들을 영적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찬양과 경배의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주를 찬양하고 말씀을 무기로 사용할 때 또 우리가 시편들 중 
하나를 노래할 때 우리는 그 시편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오는 셈이다.

우리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15:26)와 같은 
간단한 구절을 노래할 때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서 그 진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가 우리의 아픔과 잘병에 대하여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는 셈이다.

이것은 성경이 당신과 내게 요구하는 행위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둘째 우리는 말씀을 행하기로 결심해야 한다
우리는 말씀을 사단의 모든 생각들에 대한 판단자로 삼음으로써 
이런일을 성취할 수가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당신의 삶에서 이런일이 일어났을 때 당신은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법을 배우는데서 발견할 수가 있다.




-테리로 목사님의 
믿음을 더하게 하는찬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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